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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9-2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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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진실이 조작된 궁예 이야기8

2026년도 철원문화재단 지역문화예술인 공모지원사업

기사입력 2026-09-0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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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궁예의 몰락

궁예가 미륵불이라 칭하고 불경을 저술했는데 이것을 비판한 승려 釋聰(석총, 법상종 승려, 851~ 911)先覺 逈微(형미, 864~ 917) 등을 잔인하게 척살했고 관심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였으며 왕건을 따르던 세력(홍유, 신숭겸, 복지겸, 배현경 등)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고 태봉국이 망했다.

 

* 석총은 궁예의 측근 승려였으나 후에 고려를 건국한 왕건을 추종하였고 궁예가 지은 불경을 모두 사악한 설과 괴상한 말로 교훈이 될 수 없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다가 철퇴에

맞아 사망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 되어 있다.

* 형미는 궁예가 추구하던 미륵불 사상과는 다른 왕건이 추구했던 선종 계열의 승려임에도 죽음을 맞이한 것은 궁예가 왕건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판단된다.

* 궁예가 사람들을 의심해서 관심법으로 많은 이들을 죽였다는 것은삼국사기기록에 근거 하지만 관심법은 불교에서 자기 자신을 찾는 수양법의 일종이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은 고승들이 갖게 되는 6신법 중에 하나인 심타통으로 관심법과는 상관이 없다.

 

. 궁예에게 폭군 굴레를 씌운 배경

 

1. 개요

건국 과정에서는 정통성이 있어야 한다. 정통성이 없는 정권은 그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그래야만 백성들에게 신망을 얻고 지배권을 확실히 틀어쥘 수 있다. 그것이 부족한 경우에는 권력을 확보할 수 없으며 통치권 누수를 피할 수 없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우리 역사에 출현한 국가들은 일반인들이 범접할 수 없는 건국 신화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일반 백성과 차별화를 만들고 누구든지 엿볼 수 없는 신성불가침 영역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만들어졌다. 그것이 부족한 경우에는 자신들의 약점을 덮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지는데 그것이 진실을 속일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그 동안 한반도에 등장했던 국가들의 건국신화를 살펴보면 정통성이 선명한 사례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는데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단군조선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로 하늘에서 내려온 환인(桓因) 서자 환웅(桓雄)과 웅녀 신화를 통해서 단군이 건국을 한다. -삼국유사기이 제1, 고조선(왕검 조선)

 

2). 고구려 주몽 신화

천제가 부여의 옛 도읍지에 내려 보내 태자 해모수와 유화 사이에서 알로 태어나 고구려를 건국 한다. -삼국유사13, 고구려본기

 

3). 백제 건국 신화

고구려 동명성왕 아들 비류와 온조가 남쪽으로 내려와 백제를 건국 한다. -삼국사기13, 백제본기.

 

4). 신라의 박혁거세 신화

진한(辰韓) 땅의 여섯 마을 우두머리들이 모여 왕을 천거하는 과정에서 알을 발견했는데 그 알에서 박혁거세가 태어나 왕으로 추대 했다. -삼국유사1, 혁거세왕.

 

5). 가야의 김수로왕 신화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알에서 태어나 김해(금관가야)에서 나라를 건국했다. -삼국유사1, 기이2, 가락국기

 

6). 고려는 궁예가 폭군이라는 이유로 역성혁명

왕건이 자신이 모시던 궁예의 폭정을 이유로 몰아내고 자신이 왕좌 차지하고 나라를 세웠다. - 삼국사기50, 弓裔傳

 

7). 조선의 역성혁명

이성계가 고려 마지막 우왕이 능력과 자질이 부족해 역성혁명을 일으켜 조선을 건국

 

* 역성혁명은 임금 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쫒아낸 것을 합리화 하는 용어인데 단재 신채호는 1931623조선일보에 연재한 조선사(12)에서 이성계가 고려 마지막 왕 의 목을 베고 그 자리를 빼앗을 때 왕을 죽인 화가 미치는 것을 두려워해서, 는 원래 왕씨의 왕통을 잇 지 못할 요승 신돈의 천첩 반야의 소생이라는 구실을 만들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관리자 (korea78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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