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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8-0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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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분석]정리가 필요한 상허 이태준 선생의 연보

기사입력 2011-07-2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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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는 말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문인은 상허 이태준 선생이다굨 지난 8일 철원문화복지센터에서 개최된 백일장에 많은 학생들이 참가를 해서 성황을 이루었다. 또한 11월이면 개최되는 상허 이태준 문학제에 전국의 문인들이 모여드는 것만 봐도 위상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스스로 자랑스러운 문인으로 기리고 있냐는 반문에는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상허 이태준 선생 문학 계승 사업이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상허 이태준 선생의 연보가 기록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이다. 한사람의 행적을 기록하는데 작자에 따라 다르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통일된 연보를 만드는 것은 후손된 도리이다. 당연한 책임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본 신문에서는 이 문제들에게 대해서 설명을 하고자 데스크 분석으로 게재한다.

 

2. 첫 번 째 논란


정확한 출생지

 

가. 논란 요약

 상허 이태준 선생의 출생지를 보면 크게 2곳으로 나뉘어 지고 있다.
▶ 강원도 철원군 무장면 출생 
▶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출생

 위의 내용 중에 어느 곳이 맞을까? 현재의 지명은 모두 묘장면으로 쓰고 있다. 묘장초등학교, 미수복 묘장면 등으로 일반적으로 통용 되고 있다. 그렇다면 '철원군 무장면'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또 그렇게 쓰는 것은 잘못된 표기일까 궁금해 진다. 본 철원 신문에서 조사한 옛날 자료를 보면 '철원군 무장면'이라는 지명이 일관되게 등장을 한다.

 

나. 철원군 무장면으로 기록된 자료

 

◈ 1750년대

 동면(東面, 11개리), 갈종면(葛宗面, 11개리), 서면(西面, 9개리), 송내면(松內面, 5개리), 관인면(寬仁面,9개리), 북면(北面, 9개리), 어은동면(於隱洞面, 5개리), 무장면(畝長面, 9개리)

 

◈ 1850년대

 동변면(東邊面), 서변면(西邊面), 송내면(松內面), 관인면(寬仁面), 어은동면(於隱洞面), 북면(北面), 무장면(畝長面), 갈미면(葛未面), 고파면(高坡面), 만종면(萬宗面)), 외서면(外西面), 백산면(白山面), 신제처오면(新提處午面)

 

◈ 일제강점기

 1914년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경기도 삭녕군에서 내문면(乃文面), 인목면(寅目面), 마장면(馬場面) 등을 병합하고, 동변면(東邊面)과 송내면(松內面)을 통합하여 동송면(東松面)으로 호칭.

 

◈ 법률 제350호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 신 행정구역
 철원군 철원읍(무장면 편입), 갈말면, 동송면(어운면 편입), 신서면(인목면 편입)
 김화군 김화읍, 근북면, 근동면, 원남면, 원동면, 임남면, 서면, 근남면

 

다.  두 가지로 표기된 이유

사전적 의미

 畝: 이랑 무, 이랑 묘 

 
 ①이랑(갈아 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아울러 이르는 말) ②백 평(전답의 면적 단위) ③밭 넓이 ④밭두둑, 밭두렁(밭이랑의 두둑한 부분)

 

ⓐ이랑(갈아 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아울러 이르는...)

 

 이 한자의 정확한 독음은 2가지 '이랑무' '이랑묘'이다. 그런데 옛날 자료에는 '무장면'으로 기록되어 있는 이유는 당시에는 '이랑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랑묘'를 쓴 것은 수복 이후에 사용되었다.

 
 상허 이태준 선생이 태어난 1904년에는 '철원군 무장면'이 맞는 지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지명을 현대식으로 바꾸어 쓴 '묘장면'으로 쓴 것도 틀린 것은 아니라 할 수 있다.

 

라. 정확한 지명 정리가 필요한 부분

 

 우리 지명에는 표기 방법에 따라 바뀐 것이 많다. '이장족리'를 '이평리'로 바꾸고 '화강'을 '남대천'으로 일본식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남대천은 주민들의 노력끝에 화강으로 바꿀 수 있었다굨.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지 않더라도 묘장면 복원을 원하는 단체에서는 본래 지명이었던 '무장면'에 대해서 입장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마. 정확한 출생지 표기 방법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각 연보에는 지명이 통일 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본 신문에서는 아래와 같이 출생지를 통일할 것을 제안한다.

 -1904년 강원도 철원군 무장면(현재 지명:묘장면) 출생

 

3. 이태준 선생 아버지 논란

 

가. 논란 상황

 

 현재 각종 문예지나 서적에는 상허 이태준 선생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은 크게 3가지로 기록 되어 있다.(이하 존칭 생략)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논란은 조상에 대한 무례이기 때문에 분명한 정리가 필요하다. 특히 어떤 잡지에서는 상허 이태준 선생의 姓氏를 '金'으로 표기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나. 父가 이문규라는 기록

 - 1904년 11월 4일 강원도 철원군 무장면 산명리에서 부친 이문교굚 모친 안순흥 사이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다. 父가 이창하라는 기록

 -1904년(1세) 11월 4일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父 장기 이씨 창하(昌夏)와 母 순흥 안씨 사이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

 

라. 父가 김창하라는 기록 

 -1904년 11월 4일 강원도 출생, 1남 2녀 중 장남, 부(父) 장기 이씨 김창하 모(母) 순흥 안씨

 

마. 이런 논란의 원인 

 김창하라는 기록은 착오로 보여지며 '이문규' '이창하' 논란은 표기 방법의 오류이다. 정확한 기록을 보면 아래와 같다.

 장기 이씨 가승 기록에 의하면 父 이창하(1876-1909)의 字는 문규(文奎), 호는 매헌(梅軒), 철원공립보통학교 교원, 덕원감리서 주임을 역임한 개화파,

 오류의 원인은 어린 시절 부르던 이름을 기록함으로서 발생된 것으로 판명 되었다.

 

 바. 앞으로 사용해야 할


통일 된 父의 연보

 

 본 신문이 세밀한 조사를 통해 최종 결론을 내린 연보는 아래와 같다. 어렸을 때 부르는 이름인 字를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이문규'를 사용하는 것보다 '이창하'를 쓰는 것이 현실에 맞는 것이다.

 - 父 이창하의 2남 1녀 중의 장남

 

4. 나가는 말

 

 상허 이태준 선생의 연보를 수정하는 일에는 우리가 나서야 한다. 통일된 내용으로 정리를 하도록 하는 것은 작은 애향심일 수도 있다. 이런 일을 하면서 상허 이태준 선생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주민들의 관심은 이태준 선생의 문학촌을 건립하는데 정신적 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본 신문사 개인적 입장에서는 지금부터라도 상허 이태준 문학 세계를 재조명하는 장소가 마련되기 위해서는 문학촌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철원군에서는 앞에서 지적한 이태준 선생의 연보를 널리 홍보하는데 앞장 서야 할 것으로 판단되는 시기이다.(본 기사의 모든 내용의 소유권은 철원신문에 있음으로 인용할 경우 출처를 본 신문으로 밝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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